Main chapter1. Megachurch 공간분석



포스트를 읽기 전에 이번에는 교회를 떠올려보자. 어떤 교회들이 떠오르는가?
인트로에서 나왔었던 어렸을 적에 엄마 손을 잡고 갔던 벽돌 교회가 떠오를 수도 있고,
혹은 시골의 작고 조용한 교회를 떠올릴 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요즈음 사람들이 가장 쉽게 떠올리는 교회는 초대형교회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다음 사진들은 한국의 초대형 교회들이다.




(왼쪽 위부터 영락교회, 충현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순)


<초대형교회>는 말 그대로 "mega+church", 즉 큰+교회이다.
이것을 교회의 신도 수로 분류해 놓은 표가 있으나 오로지 신도수 만으로 교회를 분류하는 것은 상당히 오점이 많은 방법이므로 표를 넣지 않았다.

한국의 교회는 시기에 비하여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 땅의 첫 선교사였던 존 로스를 시작으로 개신교는 의료, 교육 등의 다양한 문화적 종교 활을 하였고 이는 한국 개신교의 성장에 큰 몫을 하였다. 후에도 한국 교회는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며 그 성장을 이루었는데, 1970년대의 다양한 집회와 부흥회로 인한 폭발적 성장을 빼 놓을 수 없다. 지금의 한국 초대형교회들은 모두 70년대의 성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70년대 개신교 성장에 관한 블로그
*70년대 개신교 성장에 관한 기사

특히 1973년에 있었던 전도대회1977년 대전도 집회는 70년대 기독교 역사의 빼놓을 수 없는 한 축이다.
(위 하이퍼링크에 전도대회 내용과 대전도 집회 내용 있음)
















      (위는 1973년 당시의 전도 집회의 지면 광고.)





이같은 종교적 요인 외에도
초대형교회가 등장하게 된 요인은 다양하다.

 
우선 사회적 요인 들 수있다. 산업화도시화가 진행 되면서 수도권의 인구 집중화가 심화 되었고, 중산 계급들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이에 따라 이들이 한 지역에서 생활을 공유하였고 곧 이들을 기반으로한 대형교회들이 등장하였다. 특히 신도시 건설 계획으로 인한 일부 지역의 대규모 주거단지 건설은 빼놓을 수 없는 교회의 대형화를 주도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당시의 정치,경제적 불안은 사람들의 심리에 불안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불안한 심리적 요소는 사람들을 절로 종교에 의지하게 만들었고 이 역시도 교회의 대형화에 한 몫을 하였다. 

그 이후로 한국 교회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초대형교회!
 이제 초대형교회가 어떻게 생겨난 지에 대해 알아보았으니
다음 포스트에는 <일산의 벧엘교회>를 대상으로초대형교회를 분석해보자!





(오른쪽은 일산의 벧엘교회)

덧글

  • 2010/12/04 16:16 # 답글

    트랙백 내용이 수정되었는데 그게 이글루에서 보이질 않네요; 트랙백 내용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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